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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8

대금과 함께 자란다는 것

이정윤 · 대금 연주자

새해가 되면 이상하게 옛날 생각이 많이 납니다. 올해 첫 글은 제가 자란 학교 이야기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저는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사춘기의 거의 전부를 국악 하는 아이들 틈에서 보낸 셈입니다.

그 학교의 아침은 소리로 시작됩니다. 등굣길 복도에서 이미 누군가는 가야금을 조율하고, 누군가는 판소리 목을 풀고, 어디선가는 장구 소리가 새어 나옵니다. 처음에는 그 소음이 신기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없으면 오히려 허전했습니다. 소리가 공기처럼 당연해지는 경험을 그때 했습니다.

대금이 과목이 아니라 생활이었던 곳

일반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은 학원이 끝나면 공부에서 벗어났지만, 저희는 그런 경계가 없었습니다. 수업이 끝나도 연습실에 남았고, 시험 기간에도 입술은 취구 위에 있었습니다.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이상하게 억울하지는 않았습니다. 대금이 숙제가 아니라 그냥 제 하루의 일부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시절 가장 크게 배운 것은 기교가 아니라 '듣는 귀'였습니다. 옆 연습실에서 나보다 잘 부는 소리가 들리면 분해서 다시 불었고, 나보다 어린 후배가 좋은 소리를 내면 몰래 문 앞에 서서 들었습니다. 잘하는 소리를 매일 듣고 자란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교육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물론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기 시험 전날의 그 서늘한 긴장감, 등수가 붙는 순간의 복잡한 마음 같은 것들도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경쟁을 배우는 것이 좋은 일인지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경쟁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소리를 미워하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무대 위에서는 경쟁자였지만 무대 아래에서는 같은 악기를 사랑하는 동료였습니다.

교복 입고 산조를 배우던 마음

교복을 입고 산조를 배운다는 것은 지금 생각하면 조금 신기한 그림입니다. 산조에는 삶의 굴곡 같은 것이 들어 있다고들 하는데, 열몇 살짜리가 그걸 알 리가 없었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그래도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소리의 길을 몸에 새기는 시기이고, 뜻은 나중에 채워진다고요.

그 말이 요즘 자주 생각납니다. 그때 아무것도 모르고 외웠던 가락들이 지금 와서야 조금씩 말을 걸어옵니다. 아, 이 대목이 이런 마음이었구나 하고 뒤늦게 알아차리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어릴 때 몸에 넣어둔 소리가 자라면서 함께 자라는 느낌입니다.

대금과 함께 자란다는 것은 결국 그런 것 같습니다. 악기를 배우는 게 아니라, 악기와 같은 속도로 크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 다 자라지 않았고, 제 소리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블로그의 첫 글을 여기서 시작합니다. 자라는 중인 사람의 기록으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