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5
다음 세대의 국악을 상상하며
이정윤 · 대금 연주자
저는 지금 배우는 사람입니다. 무대에 서고 상도 받았지만, 제 정체성의 대부분은 여전히 학생입니다. 그런데 요즘 문득문득 이상한 상상을 합니다. 다음 세대는 국악을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까 하는 상상입니다. 배우는 사람이 벌써 이런 생각을 하는 게 건방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배우는 중이라서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믿고 적어봅니다.
제가 국악을 만난 경로를 돌아보면, 저는 운이 좋은 경우였습니다. 집에 소리가 있었고, 전통예술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었고, 영재교육원이 있었고, 콩쿠르와 무대가 있었습니다. 길이 이미 놓여 있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이 길 바깥에 있는 아이들에게 국악은 여전히 멀리 있습니다. 다음 세대의 국악을 상상할 때 제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이 '입구'의 문제입니다.
입구가 많은 음악이 되기를
저는 다음 세대의 국악에 입구가 훨씬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공연장에서 만나는 국악, 영상으로 만나는 국악, 게임과 영화 음악 속에서 스치듯 만나는 국악, 직접 불어보며 만나는 국악. 어떤 문으로 들어와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깊은 방은 안쪽에 잘 지켜두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일단 들어와 볼 수 있는 문이 곳곳에 열려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저는 다음 세대가 '진짜'를 들을 기회를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짧고 자극적인 것들이 넘치는 시대에, 한 시간 가까운 산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경험은 점점 귀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긴 호흡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편해진 입구와 깊은 안방, 이 둘을 함께 지키는 것이 우리 세대의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악기와 기술의 변화도 상상해봅니다. 다음 세대는 아마 지금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기술과 함께 음악을 할 것입니다. 녹음과 영상은 물론이고, 배우는 방식 자체가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 변화가 두렵지 않습니다. 대금은 대나무에 구멍을 뚫은 악기이고, 결국 사람의 숨이 있어야만 소리가 납니다. 그 마지막 자리는 기술이 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받은 사람에서 건네는 사람으로
이런 상상을 하다 보면 결국 제 자리로 돌아오게 됩니다. 다음 세대의 국악은 결국 지금 세대가 무엇을 하느냐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늘 소리를 얼마나 깊게 만드느냐, 무대에서 얼마나 정직하게 연주하느냐, 국악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 이 작은 것들이 쌓여서 다음 세대가 물려받을 국악의 모습이 됩니다.
저는 지금까지 받기만 하며 컸습니다. 스승들께, 학교에, 옛 명인들의 녹음에, 집안의 소리에 빚을 지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언젠가는 저도 건네는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날 부끄럽지 않으려면 지금 잘 받아두어야 합니다. 잘 받는 것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물려주기라고 믿습니다.
다음 세대의 국악이 어떤 모습일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하나는 확신합니다. 그때에도 누군가는 대나무 관에 숨을 불어넣고 있을 것이고, 그 소리는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흔들 것입니다. 그 미래의 연주자에게 좋은 다리가 되는 것, 그것이 지금 제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