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1
가족이 모두 대금을 분다는 것
이정윤 · 대금 연주자
가끔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대금을 시작하게 됐느냐는 질문입니다. 그때마다 저는 조금 웃게 됩니다. 저에게 대금은 '시작'한 기억이 없는 악기이기 때문입니다. 저희 가족도 대금을 합니다. 그래서 저희 집에는 제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늘 대금 소리가 있었습니다.
어떤 집에는 텔레비전 소리가, 어떤 집에는 피아노 소리가 배경처럼 깔려 있다면, 저희 집의 배경은 대금이었습니다. 방문 너머로 들려오는 연습 소리, 같은 대목이 수십 번 반복되는 소리, 어느 날은 시원하게 뻗고 어느 날은 잘 안 풀리는 소리. 저는 그 소리를 들으며 숙제를 하고 밥을 먹고 잠이 들었습니다.
배우기 전에 스며든 소리
그래서인지 저는 대금을 '배우기' 전에 이미 대금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악기를 잡았을 때, 소리 자체는 당연히 안 났지만 어떤 소리가 나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귓속에 이미 기준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큰 출발선의 차이인지, 나중에 학교에 가서야 알았습니다.
물론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집에 잘 부는 소리가 있다는 것은, 제 서툰 소리가 매일 비교당하는 환경이기도 했습니다. 비교하는 사람이 없어도 제가 스스로 비교했습니다. 사춘기 무렵에는 그게 답답해서 대금이 싫어진 시기도 잠깐 있었습니다. 온 집이 대금인데 나까지 대금이어야 하나,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를 지나게 해준 것도 결국 그 소리였습니다. 어느 날 방에서 들려오는 연습 소리를 무심코 듣는데, 문득 그 소리가 너무 좋았습니다. 가족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음악으로 좋았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나는 이 소리를 벗어나고 싶은 게 아니라, 이 소리에 내 방식으로 대답하고 싶은 거구나.
같은 악기, 다른 소리
신기한 것은, 한집에서 같은 악기를 불어도 소리는 각자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대금은 부는 사람의 몸과 숨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악기라서, 같은 가락도 사람마다 완전히 다른 소리가 됩니다. 저는 그 다름이 참 좋습니다. 한 지붕 아래의 대금 소리들이 서로 닮았으면서도 각자의 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요.
집에서 함께 음악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복입니다. 연주가 안 풀리는 날의 갑갑함을 설명 없이 알아주는 사람이 집에 있다는 것. 좋은 공연을 보고 온 날 밤늦게까지 그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은 밖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종류의 위로입니다.
언젠가 제가 지금보다 나이 든 연주자가 되어도, 제 소리의 가장 깊은 층에는 어린 시절 방문 너머로 듣던 그 대금 소리가 깔려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 소리 위에 제 소리를 쌓아가는 중입니다. 그게 저희 집에서 자란 저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