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1
연습실 밖의 공부
이정윤 · 대금 연주자
연습 시간이 실력을 만든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상한 경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리가 크게 자란 계기들을 돌아보면, 그중 몇 개는 연습실 밖에 있었습니다. 오늘은 음악이 아닌 것들이 소리 안으로 들어오는 방식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시의 이야기부터 하고 싶습니다. 우연히 시집을 읽다가, 시인이 단어와 단어 사이를 비워두는 방식에 한참 머문 적이 있습니다. 다 말하지 않아서 더 많이 말해지는 것. 그런데 그게 정확히 정악의 미덕이었습니다. 그 뒤로 긴 음 하나를 뻗을 때, 시의 여백을 생각하면 소리가 달라집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달라집니다.
걷기와 호흡
산책도 저에게는 공부입니다. 대금은 호흡의 악기라서, 몸의 리듬이 소리의 리듬과 바로 이어집니다. 걷다 보면 발걸음과 숨이 자연스러운 박을 만드는데, 그 박이 참 정직합니다. 조급한 날은 걸음도 숨도 급하고, 그런 날의 연주는 어김없이 쫓기는 소리가 납니다. 요즘은 연습이 안 풀리면 일단 나가서 걷습니다. 몸의 박자를 먼저 고치는 것입니다.
전시장에서 배운 것도 있습니다. 옛 그림들을 보다가, 화면을 꽉 채우지 않고 큰 여백을 남겨둔 그림 앞에 오래 서 있었습니다. 비어 있는데 비어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그 여백이 그림을 숨 쉬게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음악의 쉼도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소리가 없는 자리가 결핍이 아니라 공간이 되는 것 말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음악을 하지 않는 친구들과의 수다에서 오히려 음악에 대한 힌트를 얻을 때가 많습니다. 그 친구들은 국악의 문법을 모르는 대신, 솔직한 귀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연주가 왜 지루했는지, 어떤 대목에서 왜 좋았는지를 이론 없이 말해줍니다. 그 말들이 저에게는 어떤 평론보다 무섭고 유익합니다.
결국 소리는 사람의 크기만큼
제가 좋아하는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연주는 결국 그 사람이 담고 있는 것 이상을 내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술은 그릇을 다듬지만, 그릇에 담기는 내용물은 삶에서 옵니다. 읽은 것, 본 것, 걸은 길, 만난 사람, 겪은 감정이 전부 재료가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연습실 밖의 시간도 허투루 쓸 수가 없습니다.
물론 균형은 필요합니다. 바깥 공부를 핑계로 정작 악기를 놓으면 본말이 뒤바뀝니다. 하루의 중심은 여전히 연습이고, 바깥의 것들은 그 연습에 흘러들어오는 물줄기입니다. 저는 그 물줄기들을 되도록 여러 갈래로 열어두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 저의 공부 목록에는 악보 옆에 시집이 있고, 연습 일지 옆에 산책 코스가 있습니다. 이상해 보일지 몰라도, 저는 이 목록 전체가 대금 공부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