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07
국악은 힙해질 수 있을까
이정윤 · 대금 연주자
'요즘 국악이 힙하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국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반가운 말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조금 복잡해집니다. 오늘은 그 복잡함을 풀어서 적어보려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는 낙관하는 쪽입니다. 다만 조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또래 친구들에게 국악은 대체로 '학교에서 배운 음악'입니다. 시험 범위였던 음악이지, 플레이리스트에 넣는 음악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분위기가 정말 달라졌습니다. 국악 기반의 밴드가 큰 무대에 서고, 전통 소리를 샘플링한 곡들이 인기를 얻고, 공연장에 제 또래 관객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이 변화는 통계 이전에 피부로 느껴집니다.
'힙하다'는 말의 함정
그런데 저는 '힙하다'는 말에 함정이 하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힙함은 유행이고, 유행은 지나갑니다. 국악이 힙해서 사랑받는다면, 힙하지 않게 되는 순간 버려질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신기한 것, 이색적인 것으로 소비되는 국악은 오래 못 갑니다. 저는 국악이 신기한 음악이 아니라 그냥 좋은 음악으로 들리기를 바랍니다.
퓨전에 대한 생각도 자주 묻는 질문이라 적어봅니다. 저는 전통과 새로운 시도가 싸우는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지금 우리가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들 상당수가 그 시대에는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산조만 해도 등장했을 당시에는 파격이었다고 배웠습니다. 전통은 완성된 유물이 아니라 계속 움직여온 흐름입니다.
다만 순서는 있다고 믿습니다. 깊이 알고 나서 벗어나는 것과 모르고 벗어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전통을 제대로 통과한 사람의 새로움에는 뿌리가 있고, 그 뿌리가 있어야 유행이 지나도 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시기에 고집스럽게 정통 산조와 정악을 파고드는 것이 오히려 가장 미래지향적인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좋은 소리가 이깁니다
친구들을 공연에 데려가 보면 재미있는 일이 생깁니다. 국악을 전혀 모르는 친구도 좋은 연주 앞에서는 어김없이 조용해집니다. 끝나고 나서 그게 무슨 장단이었는지는 몰라도, 어느 대목에서 소름이 돋았는지는 정확히 말합니다. 좋은 소리는 배경지식 없이도 사람을 통과합니다. 저는 여기에 희망을 겁니다.
그러니까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국악은 힙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힙해지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유행을 좇는 게 아니라, 유행이 찾아왔을 때 실망시키지 않을 만큼 좋은 소리를 준비해두는 것입니다. 무대까지 와준 새로운 귀들에게 '어, 이거 진짜 좋은데'라는 경험을 안겨주는 것, 그게 저희 세대 연주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도 그 준비를 합니다. 유행은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소리는 저희가 어떻게 해볼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