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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6

슬럼프에 대하여

이정윤 · 대금 연주자

이 글을 쓸지 말지 오래 망설였습니다. 잘하는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연주자의 기록이라면 소리가 나오지 않던 날들에 대해서도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도 슬럼프가 있었고, 어쩌면 앞으로도 또 올 것입니다.

그 시기는 예고 없이 왔습니다. 어제까지 되던 것이 오늘 안 됐습니다. 호흡이 짧아지고, 음정이 흔들리고, 무엇보다 제 소리가 낯설게 들렸습니다. 처음에는 컨디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그 낯섦이 사라지지 않았을 때,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그것이구나.

열심히 할수록 나빠지는 이상한 시간

슬럼프의 가장 잔인한 점은 노력이 배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데 있습니다. 안 되니까 더 연습했고, 더 연습할수록 더 안 됐습니다. 조급함이 몸에 힘을 넣고, 힘이 들어간 몸은 나쁜 소리를 내고, 나쁜 소리는 다시 조급함을 키웠습니다. 완벽한 악순환이었습니다. 연습실 문 앞에서 들어가기 싫어 서성인 날도 있었습니다.

돌파구는 의외의 곳에서 왔습니다. 어느 날 도저히 안 되겠어서 연습을 접고 그냥 옛 명인들의 음원만 하루 종일 들었습니다. 불려고 듣는 게 아니라 그냥 좋아서 듣던, 처음 국악에 반했을 때처럼요. 그런데 그렇게 듣다가 문득 눈물이 났습니다. 아, 나 이 소리가 좋아서 시작했었지. 잘하려는 마음에 밀려서 좋아하는 마음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슬럼프를 조금 다르게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억지로 뚫으려 하지 않고, 몸과 마음이 무언가를 재정비하는 기간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연습 시간을 오히려 줄이고, 대신 한 번 불 때 더 집중했습니다. 산책을 하고, 잠을 충분히 자고, 음악이 아닌 책도 읽었습니다. 소리는 결국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라, 사람이 회복되니 소리도 천천히 돌아왔습니다.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것

슬럼프가 지나간 뒤에 신기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제 소리가 슬럼프 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더 나빠진 게 아니라, 어딘가 조금 넓어져 있었습니다. 안 되는 시간 동안 저도 모르게 소리를 훨씬 예민하게 듣게 됐고, 그 귀가 남은 것입니다. 슬럼프는 아무것도 안 쌓이는 시간이 아니라,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쌓이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무대가 다가오면 그 시절의 불안이 가끔 고개를 듭니다. 다만 이제는 조금 덜 무섭습니다. 한 번 지나와 봤기 때문입니다. 소리가 떠난 것 같아도 완전히 떠난 게 아니라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 있는 한 돌아온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혹시 지금 슬럼프 안에 있는 분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대단한 조언 대신 이 말만 전하고 싶습니다. 그 시간에도 무언가는 자라고 있습니다. 당장 들리지 않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