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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9

국악과의 하루

이정윤 · 대금 연주자

저는 지금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국악과 학생의 하루가 어떤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어서, 오늘은 아주 평범한 하루를 그대로 옮겨보려고 합니다. 특별한 날 말고, 정말 아무 일도 없는 보통의 하루입니다.

아침 연습실 복도는 소리의 시장 같습니다. 어느 방에서는 해금이 활을 긋고, 어느 방에서는 피리가 서를 고르고, 저 끝 방에서는 거문고 술대 소리가 탁탁 넘어옵니다. 그 사이를 지나 제 자리를 잡으면, 저는 일단 아무것도 불지 않고 잠깐 앉아 있습니다. 오늘 제 몸 상태가 어떤지, 입술과 호흡이 어떤지 먼저 살피는 시간입니다.

연습의 대부분은 소리가 아니라 기다림

대금 연습의 절반은 사실 소리를 내지 않는 시간입니다. 긴 호흡을 고르고, 청 상태를 확인하고, 취구에 입술을 대는 각도를 미세하게 옮겨봅니다. 관악기는 그날의 컨디션이 소리에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몸이 준비되지 않은 채 무리하게 불면 오히려 나쁜 습관만 쌓입니다. 좋은 연습은 좋은 기다림에서 시작된다고 배웠습니다.

수업은 실기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이론 수업에서는 악보 너머의 것들을 배웁니다. 이 음악이 어떤 시대에,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 불렸는지를 알고 나면 같은 가락도 다르게 들립니다. 솔직히 시험 기간에는 힘들지만, 이런 공부가 연주에 스며든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점심시간의 국악과는 조금 귀엽습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대화의 팔 할이 음악 이야기입니다. 어제 본 공연 이야기, 누가 새 악기를 맞췄다는 이야기, 다음 향상음악회에서 뭘 할지 고민하는 이야기가 반찬처럼 오갑니다. 좋아하는 것이 같은 사람들과 매일 밥을 먹는다는 건 생각보다 큰 행운입니다.

합주 시간, 혼자서는 배울 수 없는 것

오후 합주 수업은 하루 중 가장 긴장되면서도 즐거운 시간입니다. 혼자 연습할 때는 제 소리만 들으면 되지만, 합주에서는 스무 개가 넘는 소리 속에서 제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대금이 나설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것, 그게 합주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잘 물러나는 법은 잘 나서는 법보다 배우기 어렵습니다.

저녁이 되면 연습실 복도는 다시 조용해지는 듯하다가, 남은 사람들의 소리로 다른 밀도를 갖습니다. 밤 연습실의 소리에는 낮과 다른 절실함이 있습니다. 저도 그 틈에서 그날 낮에 안 됐던 대목을 다시 붙잡습니다. 될 때까지 하고 가겠다는 날도 있고,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인정하는 날도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어폰으로 명인들의 옛 음원을 듣습니다. 하루 종일 국악을 하고도 국악을 들으며 돌아가는 게 이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신기하게 질리지 않습니다. 이런 하루가 쌓여서 연주자가 되어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화려한 무대는 일 년에 며칠이고, 나머지는 전부 이런 보통의 날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