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5
협주곡 '부활'을 준비하며
이정윤 · 대금 연주자
2025년에 영동난계국악단과 대금협주곡 '부활'을 협연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났지만, 그 무대를 준비하던 과정이 저에게 남긴 것이 커서 이제야 차분히 글로 정리해봅니다. 협주곡 무대는 독주와도, 합주와도 완전히 다른 세계였습니다.
처음 악보를 받아 들었을 때의 마음을 기억합니다. 독주곡을 익힐 때는 제 소리만 그리면 되는데, 협주곡 악보에는 수십 명의 소리가 함께 적혀 있습니다. 제 선율 아래에서 현악기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타악이 어디서 받쳐주는지를 읽어야 비로소 제 파트의 의미가 보였습니다. 혼자 연습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계속 오케스트라를 상상해야 했습니다.
첫 리허설에서 배운 것
첫 리허설 날, 솔직히 많이 긴장했습니다. 단원 선생님들은 저보다 훨씬 오래 음악을 해오신 분들이었고, 저는 협연자라는 이름으로 그 앞에 서야 했습니다. 그런데 첫 음을 맞추는 순간 긴장이 조금 다른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수십 명의 소리가 제 소리를 받쳐주는 감각은, 뭐라고 해야 할까요, 큰 물 위에 배를 띄우는 것 같았습니다.
지휘자 선생님과 호흡을 맞추는 일도 처음 겪는 공부였습니다. 독주자는 자기 호흡대로 밀고 당길 수 있지만, 협주곡에서는 그 밀고 당김을 오케스트라 전체와 나눠 가져야 합니다. 제가 숨을 쉬는 자리를 지휘가 읽고, 지휘의 손끝을 제가 읽는, 말 없는 대화가 계속 오갔습니다. 음악이 언어라는 말을 그때처럼 실감한 적이 없습니다.
'부활'이라는 제목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했습니다.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한 번 스러진 적이 있다는 뜻입니다. 곡의 어둡고 가라앉은 대목들을 불 때, 저는 그 스러짐을 어떻게든 진짜로 느껴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야 뒤에 오는 상승이 거짓말이 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무대 위에서의 몇십 분
본 무대의 기억은 이상하게 조각나 있습니다. 무대에 오르던 발걸음, 첫 호흡, 카덴차 직전의 정적 같은 장면들만 사진처럼 남아 있습니다. 다만 하나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어느 순간부터 무섭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뒤에서 받쳐주는 소리가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습니다.
연주가 끝나고 객석의 박수를 받으며 든 생각은 의외로 담백했습니다. 아, 나는 아직 배울 게 정말 많구나. 잘했다는 만족보다 다음에는 더 깊게 하고 싶다는 갈증이 먼저 왔습니다. 그 갈증이 지금도 저를 연습실로 데려갑니다.
협주곡 무대는 저에게 '함께'라는 말의 크기를 새로 가르쳐줬습니다. 대금은 혼자서도 완결된 악기지만, 다른 소리들 속에 놓일 때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앞으로도 그 얼굴들을 하나씩 만나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