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19
청어람 무대 뒤에서
이정윤 · 대금 연주자
차세대 명인발굴 프로젝트 '청어람' 무대에서 김동진류 대금산조를 협연했습니다. 청어람이라는 이름은 쪽에서 나온 푸른빛이 쪽보다 푸르다는 청출어람에서 온 것입니다. 그 이름의 무게를 무대 뒤에서 계속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조명이 닿지 않는 쪽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차세대 명인'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한 심정은 기쁨보다 민망함에 가까웠습니다. 명인이라는 단어는 평생을 소리에 바친 분들에게 붙는 말인데, 그 앞에 서게 된 제가 너무 가벼워 보일까 봐 걱정됐습니다. 그래서 준비 기간 내내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명인이 되라는 게 아니라, 명인을 향해 가는 방향을 보여달라는 뜻일 거라고요.
김동진류 산조를 들고 서는 마음
김동진류 대금산조를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한 유파의 소리를 제 몸을 통해 다시 들려드리는 일입니다. 산조는 한 바탕 안에 만든 이와 이어온 이들의 세월이 겹겹이 쌓여 있는 음악입니다. 연습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가락 자체가 아니라, 그 가락을 '제 것처럼' 부는 것과 '제멋대로' 부는 것 사이의 선이었습니다. 그 선은 악보에 없어서, 몸으로 더듬어 찾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구 반주와 맞추는 시간도 큰 공부였습니다. 산조에서 장단은 반주가 아니라 대화 상대입니다. 제가 가락을 밀면 장단이 받아주고, 장단이 죄어오면 제가 풀어냅니다. 좋은 반주자와 함께하면 혼자 연습할 때는 나오지 않던 소리가 나옵니다. 무대 뒤에서 마지막으로 눈을 맞추던 순간의 그 말 없는 신뢰를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무대 직전의 대기실 풍경도 적어두고 싶습니다. 손을 데우고, 청을 확인하고, 괜히 옷매무새를 다시 만집니다. 심장은 빨라지는데 머리는 이상하게 차분해지는, 그 특유의 상태가 있습니다. 저는 그 시간에 항상 같은 생각을 합니다. 이 음악은 나 혼자 만든 게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이상하게 덜 외로워집니다.
푸른빛은 쪽에서 나온다
청출어람에서 사람들은 '쪽보다 푸르다'에 주목하지만, 저는 요즘 '쪽에서 나왔다'는 앞부분을 더 자주 생각합니다. 아무리 푸르러도 쪽 없이 나온 푸름은 없습니다. 저의 소리도 그렇습니다. 학교에서, 스승께, 옛 음원에서 받은 것들이 없었다면 무대에 설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청어람 무대는 저에게 자격의 확인이 아니라 빚의 확인이었습니다. 받은 것이 이렇게 많으니, 언젠가는 저도 다음 사람에게 무언가를 건네야 한다는 빚입니다. 그 빚을 갚는 방법은 결국 하나뿐입니다. 계속, 성실하게, 소리를 깊게 만드는 것입니다.
막이 내리고 무대 뒤로 돌아왔을 때, 저는 이상하게 시작점에 다시 선 기분이었습니다. 끝난 무대가 아니라 열린 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문 너머로 계속 걸어가 보겠습니다.